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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2035년 07월 17일(월요일)〡00:13〡THEMIS 레지던스 2209호 안소희의 방
그는 맞잡은 오른손을 풀었다. 풀면서 손가락 끝을 한 마디씩 천천히 미끄러뜨렸다. 놓는 게 아니라 옮기는 동작이었다. 빈손이 그녀의 턱선 아래로 올라갔다. 닿지는 않았다. 피부 바로 아래에서, 온기만 느껴지는 높이에 머물렀다.
손바닥 아래로 그녀가 침을 삼키는 움직임이 공기를 타고 건너왔다. 작은 목걸이의 검은 돌이 쇄골 오목한 자리에서 한 번 흔들렸다.
'물어봐. 이번엔 그냥 물어봐, 주지호. 오 년 동안 묻지도 않고 가져다 쓰던 거, 이번엔 묻고 받아.'
그에게 입맞춤은 늘 절차였다. 가이딩 효율을 올리는 점막 접촉, 파장을 빠르게 맞추는 지름길. 누구에게도 허락을 구한 적이 없었다. 구할 필요가 없는 관계만 골라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지금 이 질문이 목구멍에 걸렸다. 처음 해보는 발음처럼.
손바닥 아래로 그녀가 침을 삼키는 움직임이 공기를 타고 건너왔다. 작은 목걸이의 검은 돌이 쇄골 오목한 자리에서 한 번 흔들렸다.
'물어봐. 이번엔 그냥 물어봐, 주지호. 오 년 동안 묻지도 않고 가져다 쓰던 거, 이번엔 묻고 받아.'
그에게 입맞춤은 늘 절차였다. 가이딩 효율을 올리는 점막 접촉, 파장을 빠르게 맞추는 지름길. 누구에게도 허락을 구한 적이 없었다. 구할 필요가 없는 관계만 골라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지금 이 질문이 목구멍에 걸렸다. 처음 해보는 발음처럼.
주지호 "진짜 궁금한 건 하나예요."
목소리가 한 칸 내려갔다. 이름을 부를 때 쓰던 높이였다.
주지호 "소희야. 키스해도 돼?"
반말이었다. 이번엔 미끄러진 게 아니었다. 고른 거였다. 주워 담지도 않았다.
말을 뱉고 나자 방 안의 온도가 달라졌다. 스탠드의 누런 빛이 벽지 위에서 조금 더 짙어진 것 같았다. 그는 제 심장이 갈비뼈 안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창밖 도시의 소음보다 컸다. 그녀에게도 들릴까 봐 걱정했다가, 들려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아까 그녀의 손목에서 먼저 들켰으니 이제 비긴 셈이었다.
말을 뱉고 나자 방 안의 온도가 달라졌다. 스탠드의 누런 빛이 벽지 위에서 조금 더 짙어진 것 같았다. 그는 제 심장이 갈비뼈 안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창밖 도시의 소음보다 컸다. 그녀에게도 들릴까 봐 걱정했다가, 들려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아까 그녀의 손목에서 먼저 들켰으니 이제 비긴 셈이었다.
주지호 "가이딩 말고. 효율 말고. 에코 수치 같은 거 하나도 안 따지고.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그는 덧붙였다가, 덧붙인 게 너무 솔직해서 잠깐 눈을 감았다. 감으니까 캄캄한 속에 오늘 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불붙던 종이, 흩어지던 재, 테이블 아래의 무릎, 코스모스의 찻잔. 그 끝에 이 방이 있었다.
눈을 떴다.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속눈썹 끝이 가늘게 떨렸다.
눈을 떴다.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속눈썹 끝이 가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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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2035년 07월 17일(월요일)〡00:15〡THEMIS 레지던스 2209호 안소희의 방
순서. 오늘 옥상에서 그 단어를 제 입으로 꺼냈었다. 제일 중요한 사람 먼저라고. 그래놓고 정작 제일 중요한 말은 건너뛰었다. 오 년 동안 몸이 먼저 가고 말은 영영 안 가던 버릇이, 여기까지 따라왔다.
주지호 "아. 그렇네. 내가 또 순서 틀렸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제 자신을 향한 웃음이었다. 그는 그 웃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가라앉자 그 밑에 깔려 있던 게 드러났다. 이름을 붙여본 적 없는 것. 붙이면 안 된다고 스스로 금지해두었던 것. 서약서를 태운 뒤로는 금지할 근거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대답을 했다. 짧게, 한 음절로. 그리고 눈을 감았다. 허락은 이미 떨어져 있었다. 그냥 가도 됐다. 예전의 그라면 벌써 입술이 닿아 있었을 거리였다.
그는 가지 않았다.
그녀는 대답을 했다. 짧게, 한 음절로. 그리고 눈을 감았다. 허락은 이미 떨어져 있었다. 그냥 가도 됐다. 예전의 그라면 벌써 입술이 닿아 있었을 거리였다.
그는 가지 않았다.
주지호 "잠깐만. 눈 감고 있어도 되는데, 이건 듣고 있어."
턱 아래 머물던 손이 마침내 닿았다. 손끝이 아니라 손바닥 전체로, 그녀의 뺨을 감싸듯. 피부가 뜨거웠다. 부끄럽다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증거가 손바닥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엄지가 광대 위의 열을 한 번 쓸었다.
혀가 굳었다. 수백 번 들은 문장이었다. 침대 위에서, 가이딩룸 소파 위에서,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사람들이 그에게 흘리던 말. 그는 그 말을 한 번도 돌려준 적이 없었다. 돌려줄 게 없었으니까.
지금은 있었다. 너무 있어서 목구멍이 좁았다.
혀가 굳었다. 수백 번 들은 문장이었다. 침대 위에서, 가이딩룸 소파 위에서,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사람들이 그에게 흘리던 말. 그는 그 말을 한 번도 돌려준 적이 없었다. 돌려줄 게 없었으니까.
지금은 있었다. 너무 있어서 목구멍이 좁았다.
주지호 "좋아해. 아니다, 이건 너무 작다."
그는 고개를 한 번 저었다. 이마 끝의 앞머리가 그녀의 눈썹을 간질였을 것이다.
주지호 "사랑해, 소희야. 가이드로서가 아니라. 결속 때문도 아니고. 에코가 잘 맞아서도 아니야. 그건 다 나중에 붙은 핑계고, 그냥 네가 좋아. 네 옆방에서 자는 게 좋고, 네가 나 대신 화내주는 게 좋고, 이사 앞에서 표 고치는 네 손목이 좋아. 네가 죽을까 봐 무서운 게, 내가 아무 방에나 들어가던 자유보다 훨씬 커. 그게 제일 웃겨."
말을 다 뱉자 귀에서 이명 같은 게 울렸다. 제 심장 소리였다. 반말은 이제 미끄러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앉아 있었다.
'했다. 진짜 했어. 주지호가.'
'했다. 진짜 했어. 주지호가.'
주지호 "이제 순서 맞지? 그럼 반칙 아니다."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이미 들었으니까. 한 뼘 남은 거리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좁혔다. 코끝이 비껴 지나가고, 숨이 먼저 닿았다. 그녀의 숨은 떨리고 있었다. 그의 것도 마찬가지였다.
입술이 닿았다. 트고 하얗게 일어난 가운데가 먼저 느껴졌다. 오늘 하루를 버틴 자리. 그는 그 위를 누르지 않고 얹기만 했다. 가이딩할 때처럼 파장을 찾아 파고들지 않았다. 효율도, 점막도, 수치도 없었다. 그냥 닿아 있었다. 그게 전부였고, 전부로 충분했다.
에코가 제멋대로 흘렀다. 막을 생각이 없었다. 서늘한 파편 대신 비 그친 흙과 늦게 피는 꽃 냄새가 그녀의 입술 끝에서 번졌다. 뺨을 감싼 손바닥 아래로 그녀의 맥이 올라왔다. 붕대 감긴 왼손 쪽에서 무언가 대답하듯 한 번 크게 뛰었다. 약지의 은색 선이 따끔했다. 아프지 않은 따끔함이었다.
그는 입술을 떼지 않은 채 아주 작게 웃었다. 웃음이 그녀의 입술 사이로 건너갔다.
'오 년 동안 키스를 몇 번 했는지 몰라. 근데 이게 처음 같다.'
짧게 떨어졌다가, 이마를 다시 붙였다. 숨이 엉망이었다. 그는 그걸 숨기지 않았다.
입술이 닿았다. 트고 하얗게 일어난 가운데가 먼저 느껴졌다. 오늘 하루를 버틴 자리. 그는 그 위를 누르지 않고 얹기만 했다. 가이딩할 때처럼 파장을 찾아 파고들지 않았다. 효율도, 점막도, 수치도 없었다. 그냥 닿아 있었다. 그게 전부였고, 전부로 충분했다.
에코가 제멋대로 흘렀다. 막을 생각이 없었다. 서늘한 파편 대신 비 그친 흙과 늦게 피는 꽃 냄새가 그녀의 입술 끝에서 번졌다. 뺨을 감싼 손바닥 아래로 그녀의 맥이 올라왔다. 붕대 감긴 왼손 쪽에서 무언가 대답하듯 한 번 크게 뛰었다. 약지의 은색 선이 따끔했다. 아프지 않은 따끔함이었다.
그는 입술을 떼지 않은 채 아주 작게 웃었다. 웃음이 그녀의 입술 사이로 건너갔다.
'오 년 동안 키스를 몇 번 했는지 몰라. 근데 이게 처음 같다.'
짧게 떨어졌다가, 이마를 다시 붙였다. 숨이 엉망이었다. 그는 그걸 숨기지 않았다.
주지호 "너도 삼킨 거 있잖아. 두 글자짜리. 지금 꺼내도 돼. 아니면 한 번 더 해도 되고. 둘 다 해도 되고."
농담처럼 끝을 올렸는데, 눈은 조금도 웃지 않았다. 간절했다. 그걸 들켜도 괜찮았다. 그는 그녀의 뺨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감긴 눈꺼풀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안소희는 그저 말 없이 느리게 눈을 떴다. 좋아해, ... 사랑해. 그 말들이 귓가에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로. 그의 심장 박동을 담아서.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어서, 어쩐지 손해보는 기분이 들었다면 그는 웃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저 입술이 맞닿았다 떨어졌을 뿐인데. 이보다 더한 키스... 도 한 번 했었잖아. 물론 가이딩이었지만. 그런 생각도 스쳐지나갔지만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
안소희는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바라보았다. 시선이 떨렸고, 목소리가 메였지만 그래도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숨을 한번 삼켰다가 입을 열었다.
눈을 감고 있어서, 어쩐지 손해보는 기분이 들었다면 그는 웃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저 입술이 맞닿았다 떨어졌을 뿐인데. 이보다 더한 키스... 도 한 번 했었잖아. 물론 가이딩이었지만. 그런 생각도 스쳐지나갔지만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
안소희는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바라보았다. 시선이 떨렸고, 목소리가 메였지만 그래도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숨을 한번 삼켰다가 입을 열었다.
안소희 "좋아해. ... ... 사랑, ... 해. 라는 말은 역시 조금 많이 부끄러운데."
한번 시선이 떨어졌다.
안소희 "... 다시, 들려줘. 얼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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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2035년 07월 17일(월요일)〡00:19〡THEMIS 레지던스 2209호 안소희의 방
주지호 "있잖아, 소희야."
목소리가 그녀의 제복에 묻혀 뭉개졌다. 그는 그대로 두었다.
주지호 "아까 대답 두 개 다 받았어. 좋아해, 도 받고 사랑해, 도 받았어. 혀 씹을 뻔한 버전으로. 그러니까 오늘 할당량은 끝났어. 더 부끄러운 거 안 시킬게. 진짜로."
잠깐 멈췄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건 농담으로 포장할 수가 없었다.
주지호 "대신 내일도 해줘. 모레도. 이천 다녀와서도. 한 번씩만. 난 그걸로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에코가 등에 얹은 손바닥에서 조용히 스며들었다. 이번엔 냄새보다 온기에 가까웠다. 겨울 이불 속에 먼저 들어가 있던 사람의 자리 같은. 그녀의 날개뼈 아래로 그 온기가 번지는 게 손바닥에 느껴졌다. 약지의 은색 선은 이제 저리지 않았다. 대신 맥박처럼 일정하게, 아주 작게 두근거렸다.
주지호 ‘걸레가 순정 코스프레 한다고 비웃겠지. 비웃으라 그래.’